서구 대중문화에서 익숙하게 등장하는 흡혈귀 하면 보통 검은 망토를 두른 드라큘라 백작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기원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죠. 놀랍게도 이러한 흡혈귀 이미지의 원형은 루마니아 전통 민속 전설에서 비롯된 ‘스트리고이(Strigoi)’라는 존재에서 시작됩니다. 스트리고이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복합적인 신념과 민속신앙이 녹아든 존재로, 루마니아의 깊은 산맥과 고요한 마을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강력한 전설 속 존재입니다.
스트리고이란 누구인가?
‘스트리고이(Strigoi)’는 루마니아 민속에서 죽은 후에도 무덤에서 일어나 살아 있는 사람의 생기를 빼앗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의 'strix(밤에 우는 새, 마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대 로마 신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스트리고이는 일반적인 유령과 다르게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밤에만 활동하면서 사람의 피나 생명 에너지를 빨아들인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흡혈귀 이미지의 시초로 간주됩니다.
이들은 보통 부정한 죽음을 맞았거나, 적절한 장례 의식을 받지 못한 사람, 혹은 생전에 마법을 사용하거나 저주를 받았던 자들이 사후 스트리고이로 변한다고 전해집니다. 이들은 살아 있는 가족이나 이웃을 괴롭히며, 가축을 죽이거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믿어졌습니다.
스트리고이와 현대의 드라큘라 이미지의 연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드라큘라 백작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처음 대중화되었지만, 실제 그 뿌리는 루마니아의 역사적 인물 ‘블라드 체페슈’와 스트리고이 전설에 있습니다. 블라드 체페슈는 15세기 왈라키아(현 루마니아 남부)의 군주였으며, 가혹한 처형 방식과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그는 생전에 사람들을 말뚝에 꽂아 처형하는 방식으로 공포의 상징이 되었고, 그의 잔혹성은 후대에 흡혈귀 전설과 결합되어 드라큘라라는 캐릭터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이처럼 스트리고이 전설은 단순한 괴담 그 이상으로, 루마니아 민속과 실제 역사, 그리고 서구 문학이 결합된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오늘날에도 루마니아 농촌에서는 스트리고이를 두려워하며, 특정한 날에는 마늘, 소금, 은 장신구, 성수 등으로 스트리고이를 막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트리고이를 막기 위한 전통적인 의식
스트리고이가 등장하는 마을에서는 이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전통 의식이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스트리고이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무덤을 다시 파헤쳐 시신에 말뚝을 박거나, 가슴에 쇠못을 박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의식을 치르곤 했습니다. 때로는 시신을 화장하거나, 성수를 뿌리는 방법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단순히 공포의 반응이 아니라, 공동체의 불안을 해소하고 안전을 기원하는 집단 심리적 안식처의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스트리고이 전설이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스트리고이(화이트 스트리고이)**와 **악한 스트리고이(블랙 스트리고이)**로 나뉘었다는 점입니다. 화이트 스트리 고이는 밤에 무의식적으로 떠돌다가 낮에는 평범한 인간처럼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되며, 일부는 예언 능력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 속 스트리고이
스트리고이는 오늘날에도 루마니아 민속과 대중문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영화, 드라마, 게임 속 흡혈귀 캐릭터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 관광산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트란실바니아 지방은 드라큘라 전설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으며, 스트리고이와 관련된 민속 박물관이나 테마 투어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스트리고이의 밤(Strigoi Night)’이라 불리는 민속 축제에서는 전통 의상과 함께 옛 전설을 재현하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문화 체험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