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신비를 품은 영혼의 이야기
히말라야 깊은 산속,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라이자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부탄. 이 작은 왕국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요괴, 도깨비와 비슷한 개념의 존재들이 민속설화 곳곳에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탄 현지 민간전승에서 자주 언급되는 존재가 바로 ‘도카르(Dokar)’이다. 도카르는 단순한 요괴를 넘어 영혼, 수호신, 혹은 자연의 분노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번 글에서는 도카르에 얽힌 민속 설화와 문화적 상징성, 그리고 한국의 도깨비와의 흥미로운 비교를 통해 부탄의 신비한 전통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도카르(Dokar)란 누구인가?
도카르는 부탄의 고산 지대나 외딴 마을 근처 숲, 혹은 성역 근방에 나타나는 신비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이 존재는 때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눈은 불빛처럼 빛나며, 옷자락은 바람처럼 흐르고, 걸음은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도카르는 천벌을 내리거나 사람들을 시험하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이자, 마을을 지키는 수호령일 수 있다고 전해진다.
부탄 전통 신앙은 티벳 불교와 애니미즘이 결합된 형태로, 산, 나무, 바위, 심지어 강에도 정령이 깃든다고 믿는다. 도카르 역시 이와 같은 믿음에서 비롯된 정령 또는 요괴로, 때로는 자연을 훼손하거나 전통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자연의 심판자’로 등장한다.
도카르에 얽힌 대표적인 민속설화
가장 유명한 도카르 전설은 부탄 서부 지방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다. 한 마을에 외지인이 찾아와 고산의 신성한 숲을 개간하려 하자, 연이어 가축들이 죽고 아이들이 병에 걸렸다. 마을의 라마(승려)는 수행을 통해 도카르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가 숲의 수호령임을 밝혀낸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숲을 보호하기로 결정하고, 매년 제사를 지내며 도카르의 평화를 기원하게 된다. 이 설화는 인간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경고하는 교훈을 담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밤중에 혼자 여행하던 사내가 환영에 빠져 낭떠러지로 향하게 되는데, 우연히 부적을 지닌 덕에 도카르의 장난에서 벗어나 목숨을 구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처럼 도카르는 악의적인 존재로만 그려지기보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중립적 존재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도깨비와 도카르의 비교
한국의 도깨비와 부탄의 도카르는 겉보기엔 유사하지만 그 성격에는 차이가 있다. 한국 도깨비는 주로 장난을 치거나 사람들과 유쾌한 교류를 나누는 반면, 도카르는 좀 더 신성하고 위엄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도깨비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며 복을 주기도 하지만, 도카르는 좀 더 자연의 이치와 규율을 상징하는 존재에 가깝다.
또한 한국 도깨비는 대개 ‘떡방아 찧는 방망이’나 ‘호리병’ 같은 도구를 지닌 반면, 도카르는 그러한 물리적 도구보다는 존재 자체에서 초자연적인 힘이 뿜어져 나온다. 이는 부탄의 도카르가 인간과 자연, 신과 정령의 경계를 흐리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도카르가 남긴 문화적 유산과 현대적 의미
현대 부탄 사회에서도 도카르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고지대 마을에서는 여전히 도카르가 나타난다는 전설이 회자되며, 아이들은 저녁 무렵 혼자 다니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관광지에서조차 도카르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목각상이나 마스크, 전통 무용이 전시되고 있어, 이 존재가 단순한 전설을 넘어 부탄인의 정신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도카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을 존중하고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도카르가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과 개발이 자연을 해칠 때, 도카르가 깨어난다는 경고는 오늘날 환경 위기의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마무리: 설화 속 존재의 가치
부탄의 도카르 설화는 단순히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 인간과 초자연 사이의 조화를 강조하는 지혜의 이야기이다. 이 신비로운 존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존중, 경외, 조화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주는 고대의 메신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카르는 안개 낀 부탄의 산중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